“기술재난, 연구 네트워크 활성화 필요”
정상 사고·일탈의 정상화·느린 재난 등 이론 토대로 국내 기술재난 사례 분석해야
기존 재난대응 패러다임 자연재난에 근거…회복탄력성 고려한 재난 연구 필요

Part 01. 자연재난, 기술재난, 자연-기술 복합재난

홍 성 욱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재난이라고 하면 자연재난을 떠올리지만 재난에는 자연재난, 기술재난, 자연-기술 복합재난 등이 있다. 

이런 재난의 특성으로 학자들은 △급작스러움 △일상의 심각한 교란 △교란에 적응하기 위한 계획 없는 행동을 낳음 △기대하지 않았던 삶이 시작됨 △사회적 가치에 위협을 가함 등을 꼽고 있다.

재난에 대해 약 30여 개의 정의가 있지만 최근에는 사회과학적인 전통이라고 해서 재난을 재해의 결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원인과 사회가 어떻게 만나는 지가 재난을 결정하는 사회과학 안에서의 재난이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는 재난을 사회구조와 결부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재난은 어떠한 정의를 따라도 인간사회와 관련된 것이다. 무인도가 사라졌다고 해서 재난으로 치지 않는 것이 이런 이유다.

사회적으로 재난을 이해하려면 취약성(vulnerability)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똑같은 재난이라도 사회가 재난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었는지에 따라서 취약성이 다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재난은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는 재난을 얼마큼 준비했는지와 재난 발생 후에는 비상상황에 대해 얼마큼 준비했는지 등에 따라 취약성이 정해지고 재난의 피해가 결정된다.

기술재난, 사람에 의해 유발…공동체 파괴 경향 강해

일반적으로 재난관리는 재난 충격(disaster impact) 모델을 사용한다. 이 모델의 재난관리 4단계는 첫 번째 대응, 두 번째 복구, 세 번째 예방, 네 번째 대비 순이며, 이 모델은 자연재난에 근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홍수, 산불, 가뭄이 발생하면 사회가 어떤 대응을 함으로써 재난을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모델이다.

그러나 기술재난(technological disaster)은 자연재난과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안전관리기본법」 상 재난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사회재난은 기술재난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 기술재난은 일반적으로 재난을 유발하는 사건이 자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행동에 의한 재난을 말하며,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유발된 재난이다. 즉, 그 재난을 유발하는 사건이 사람인지, 자연인지에 따라 기술재난과 자연재난으로 나뉜다.

기술재난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기술재난과 자연재난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기술재난의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은 그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적개심을 보이고 갈등을 야기해 공동체가 파괴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언론이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이 고통을 가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재난이라고 하면 자연재난을 떠올리지만 재난에는 자연재난, 기술재난, 자연-기술 복합재난 등이 있다. 사진은 2005년 8월 29일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로 인해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 모습.
일반적으로 재난이라고 하면 자연재난을 떠올리지만 재난에는 자연재난, 기술재난, 자연-기술 복합재난 등이 있다. 사진은 2005년 8월 29일 미국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로 인해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 모습.

미국, 신중성이 탈리도마이드 참사 막아

기술재난의 사례를 살펴보면, 1972년 미국에 발생한 버팔로 크릭 디재스터(Buffalo Creek Disaster)가 첫 번째 기술재난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재난은 홍수로 미국 콜(coal) 댐이 무너진 사례로 처음에는 홍수로 댐이 버티지 못한 자연재난으로 생각했지만 댐의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무너지지 않아도 되는 댐이 무너져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와 유사한 국내 사례로 1987년 망원동 수재해 사건이 있다. 이 사건도 홍수로 인한 자연재난이라 생각했는데 후에 인재라는 판정을 받았다. 

탈리도마이드 참사(Thalidomide diasater)도 대표적인 기술재난의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사건은 서독의 그뤼넨탈(Grunenthal) 제약회사가 진정제와 수면제를 개발,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마쳐 1957년 약이 시판됐다. 이 약이 임산부의 입덧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어 많은 임산부들에게 이 약이 처방됐다. 그런데 1950년대 말부터 사지가 짧은 기형아가 출생되기 시작했고 그 원인이 탈리도마이드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유럽에 약 1만 명 정도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미국은 당시 식품의약국(FDA)의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oldham kelsey) 박사가 동일한 약이 인간과 쥐에 대해 다른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 주목해 시판 승인을 보류하고 있어 참사를 막았다. 이런 신중한 접근법이 미국의 탈리도마이드 참사를 막는데 유효했다.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사소한 기계의 오작동이 노심 융용(melt down)까지 일으킨 사례로, 처음에는 단순히 터빈으로 들어가는 수증기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필터의 고장이 다른 기계의 고장으로 이어져 불과 13초만에 노심의 온도, 압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원자로의 노심이 융용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으나 다행히 격납고가 튼튼해 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지는 않았다.

상호작용적 복잡한 시스템, 사고 위험 상존

이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Three Mile Island Nuclear Generating Station) 사고를 분석한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charles perrow)는 정상 사고 이론(Normal Accidents Tehory)을 만들었다. 

이 이론은 기술 시스템의 부품들이 상호작용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 사고는 필연적이라는 개념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복잡한 기술 시스템은 부품간 상호작용적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경우 하나의 부품 고장이 다른 부품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인접 부품을 신속하게 망가뜨려 정확한 고장 위치를 모를 수 있어 사람의 개입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기술재난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이론으로 다이앤 본(Diane vayghan)이라는 사회학자가 만든 일탈의 정상화(Normalization of deviance)이다. 다이앤 본은 챌린저호 폭발 사고를 사례로 들어 기술재난을 분석했다. 챌린저호 셔틀의 로켓 부스터에는 부품을 연결하는 고무로 만든 오링(O-ring)이 두 개씩 끼어져 있는데 이 오링이 시험발사에서 항상 문제가 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다고 수용할 만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다. 다이앤 본은 이 과정을 일탈의 정상화라고 명명했다. 즉, 일탈의 정상화는 처음에는 분명히 일어나면 안 되는 일탈이 일어났는데 이를 일상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복합재난, 자연재난 패러다임으로 해결 어려워

자연-기술 복합재난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개념으로, 나테크 디재스터(Natech disaster)나 테크나 디재스터(Techna disaster)를 말한다. 전자는 자연재난이 기술재난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말하며, 후자는 기술적인 행위가 자연재난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자연-기술 복합재난은 기존 자연재난 패러다임으로는 잘 설명되지도 않을뿐더러 예방 및 회복도 할 수 없다.

나테크 디재스터의 대표적인 사례가 쓰나미가 유발한 후쿠시마 원전 참사이다. 바다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했고, 그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쳐 노심 융용이 발생해 대규모 방상능이 유출됐던 사례다.

자연-기술 복합재난의 대표적인 사례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이다. 사진은 사고 이전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전경.
자연-기술 복합재난의 대표적인 사례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이다. 사진은 사고 이전의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전경.

테크나 디재스터의 사례로 오클라호마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오클라호마는 2009년 셰일오일 프래킹 공법을 도입했다. 오클라호마는 진도 3.0 이상의 지진이 연 평균 2회 정도 있던 지역인데, 이 프래킹 공법을 도입한 후 지진의 빈도가 연 2천 회로 늘어났다. 이 외에도 인간이 만든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도 테크나 디재스터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런 자연-기술 복합재난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개념이 느린 재난이라는 개념이다. 느린 재난은 탈리도마이드 참사처럼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고 오랜 기간을 두고 재난의 결과들이 나온다. 주로 환경오염이나 토양의 독성 오염으로 생겨 마을에 암환자가 하나 둘 발생하기 시작하는 이런 종류의 재난이 느린 재난이다.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재난에는 더 이상 자연재해는 존재하지 않고 사회기술적 재해만이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로 대부분의 재난이 사회기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최근 강원도 산불도 소나무 조림을 잘못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순수한 의미의 자연재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 대응, 회복탄력성이 중요 

사회적 재난, 기술재난, 자연-기술 복합재난 등 재난 연구에서 회복탄력성이 굉장히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회복탄력성의 구성요소는 견고성, 대체성·예비능력, 융통성, 신속성 등 네 가지다. 견고성은 교란이나 위기를 흡수하고 이를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고, 대체성·예비능력은 재난 사고 발생 시 핵심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여분의 설비나 조직, 백업 시스템 구축을 말한다. 

융통성은 개인이나 조직이 위기 상황에서 기존의 국가, 지방정부 기능이 마비되거나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 목적달성이나 기능 수행을 위한 대체 수단을 빠르게 찾을 수 있는 역량이며, 신속성은 유사시 기능 손실을 최소화하고 최악의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최단시간 안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런 특성은 물리 및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적 차원도 포함된다.

재난 복구과정에서 관료주의적 절차를 고수하느라 제대로 지원을 하지 못함에 따라 자원봉사자와 같은 더 신속하고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소규모 조직인 공동체 중심으로 재난을 대응해야 된다라는 논의가 많이 생기고 있다. 아울러 애도나 제식, 추모 같은 사회적 의례(rituals)가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사회적 애도가 제대로 이뤄졌을 때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여러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런 일을 했던 사례도 많이 있다.

복합재난, 반복되지 않아…대응 패러다임 바꿔야

우리나라가 고도의 기술사회로 성장하면서 나테크 디재스터, 테크나 디재스터, 기술재난이 빈번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난 대응은 자연재난 패러다임에 근거하고 있다. 사회재난 또한 과거 성수대교 붕괴나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개발 패러다임의 문제점에 국한하고 있다. 

기술재난을 이해하기 위한 정상 사고 이론, 일탈의 정상화 이론, 구조적 비밀주의, 느린 재난 등을 토대로 국내사례를 깊게 분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기술재난이나 자연-기술 복합재난은 반복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재난이 발생하면 그 재난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더 이상 기술재난을 막을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기술재난이 발생하면 항상 책임자 규명과 처벌의 문제가 뒤따른다. 이를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데 이 절차에서 기술적 분석이나 사회적 애도가 조율되지 않고 있다. 예로 세월호의 경우 배가 물밑에 가라앉은 상태에서 1심, 2심 판결이 이뤄져 배를 충분히 조사하지 못한 상태에서 책임자 처벌이 먼저 이뤄졌다. 

아울러 자연재난과는 성격이 다른 기술재난, 자연-기술 복합재난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학제적 성격의 연구센터를 설립해 기술재난 연구자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워터저널』 2022년 7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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