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Ⅲ. 2021 상하수도학회·물환경학회 공동학술발표회

 
“상하수도 관리 강화로 수돗물 신뢰 회복 필요”

지자체 여건에 맞는 스마트 물관리 사업 단계적 추진해 수돗물 불신 해소 
환경부, 물산업 육성 위해 R&D 활성화·미래 전문인력 양성방안 모색해야

 

▲ 최 승 일 고려대학교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

[특별강연] 수도의 현안

 

안전한 수도가 없던 시절 인류는 수인성 전염병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1346년, 몽고군이 흑해 크림반도 카파(Kaffa)시를 공략할 때 퍼진 흑사병이 5년 만에 유럽 전역을 휩쓸며 무려 4천만 명이 사망했다. 국내에서는 영조25년(1749년), 물에 의한 전염병이 서로(西路)에서부터 일어나 여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팔로(八路)에 만연(蔓延)해 사망자가 5〜60만 명에 달했다고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다.

근대에 접어들어 정수장, 수도관 등 수도시설이 구축되기 시작하면서 수인성 전염병은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수도시설은 모조리 파괴됐고, 1960년대 우리나라 국민들은 물이 없어 공동수도나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사용했다. 그러다 1966년 AID차관을 통해 상수도가 도입된 이후 수도는 단시간에 급진적으로 구축됐고 1980년대 들어 국내 상수도 보급률은 50%를 넘어섰다.

이후 1994년 고도정수시설이 도입되면서 상수도 보급률은 꾸준히 상승했고,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수도꼭지를 열면 물이 나올 수 있는 수도 서비스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1989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수돗물 중금속 오염, THMs 검출 파동, 낙동강 페놀사고 등 각종 수질사고가 연이어 터지며 수돗물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생수 산업이 번창하고 정수기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 1960년대 우리나라 국민들은 물이 없어 공동수도나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 사용했고, 그러다 1966년 AID차관을 통해 상수도가 도입된 이후 수도는 단시간에 급진적으로 구축됐다.

 

수돗물, 먹는물로서 포기해선 안 돼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수돗물 신뢰도는 여전히 낮다. 정부가 수돗물 음용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수돗물 직접 음용률은 2012년 3.7%, 2014년 4.8%, 2019년 7.2%로 수년째 10%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먹을 수 있는 수돗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수도사업은 본디 지방사무이다. 국민에게 수도요금을 받아 운영하는 사무이다 보니 정부 예산을 배정 받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국민이 먹지 못하는 물이라면 정부의 재정 지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자체에 수도사업 예산이 적절히 배정되지 않으면 시설은 계속해서 노후화하고 노후화가 진행될수록 시설 상태는 악화된다.

악순환 속에 방치된 시설에서는 녹물이 나오고 누수가 발생하게 되며, 이는 결국 수도관 붕괴로 이어져 청소나 빨래는 물론이고, 씻는 일조차 불가능해진다. 즉 열악한 수도서비스는 우리 삶의질을 붕괴시키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돗물을 먹는물로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먹는물로서의 수돗물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환경부에 ‘수도’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이 있어야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중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이름은 대상을 인식하는 표기이자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환경부는 물관리를 일원화하면서 지방상수도 업무 전반을 담당하던 수도정책과를 물이용기획과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런데 수도 업무를 관장하는 조직 이름에 ‘수도’가 들어가 있지 않으면 사실상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진정으로 수도를 중시한다면 적어도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수도 부문, 안전성 가장 우선시해야

최근 산업 분야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을 극대화한 사업구조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비효율을 제거하고 낭비를 없앤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지만 수도산업에는 적용하기 힘들다. 수도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 서비스라는 점에서 안전성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효율만을 따지다 보면 사업 운영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인천에서 연이어 터진 붉은 수돗물 및 유충 사태는 비용 절감 위주의 수도사업 운영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물을 경제적으로 생산하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활성탄 역세척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열흘에 한 번꼴로 시행하던 역세척 주기를 한 달 가까이 늘려 수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해당 사태에서 보듯 적어도 수도 부문에서는 경제성이나 효율성보다 안전성을 우선해야 하며 이것이 본질이 돼야 한다.

한편, 관의 마찰에 의한 손실수두(損失水頭)를 구하는 달시-바이스바흐(Darcy-Weisbach)식에 따르면, 예를 들어 수도관 유수율이 50%라고 가정하면, 손실수두는 유량(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4배 증가한다. 또한 누수지점 펌프의 동력과 속도는 유량과 손실수두에 비례하기 때문에 펌프에 소요되는 에너지는 8배 더 소비된다. 즉 누수를 줄이지 못하면 그 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현재 수도사업에 소요되는 에너지의 95%가 관망 운송에 사용되는 실정이다. 최근 ‘탄소중립(넷제로·Net-Zero)’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상하수도 부문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후관을 정비해 누수를 저감하고 관망 운송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일이다.

2022년도 환경부 예산의 40%에 달하는 탄소중립 예산이 △무공해차(전기차·수소차) 보급 확대 △산업·공공부문 온실가스 감축 △녹색산업 및 녹색금융 활성화 △탄소흡수원 확대 등에 책정됐는데, 환경부는 지금이라도 탄소중립을 위해 수도 부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최근 ‘탄소중립(넷제로·Net-Zero)’이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상하수도 부문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후관을 정비해 누수를 저감하고 관망 운송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줄이는 일이다.

 

스마트 상수도, 사업목적 재고가 우선

환경부가 2019년 11월 발표한  ‘수돗물 안전관리 종합대책’ 중 관리·운영 고도화 전략의 하나로 추진되는 ‘스마트 상수도 관리체계 구축사업’은 관망 수질의 감시·관리, 사고예방 및 신속한 대응을 위해 정보통신기술(ICT)을 도입하는 사업이다. 환경부는 전국 161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사업비 약 1조2천73억 원을 투입해 최신 스마트 관망관리 기술을 설치할 계획이다.

 

다만 사업기간이 3년에 불과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19년 기준 GIS 구축률을 보면 서울특별시와 7개 광역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가 50%대에 그치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전국 161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스마트 관망관리를 추진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처사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관리주체가 이 사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관리인력이 스마트 기술을 다루고 관리할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는지, 10대 기술 대부분이 각기 적정한 운영을 위해 고도의 관망관리 모델이 필요한데 각 지자체마다 고도로 검증된 통합 관망관리 모델이 있는지, 인프라 구축 후에도 지자체 지원방안이 있는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실제 현장 담당자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사업이 촉박하게 진행되다 보니 현장 실정에 맞지 않게 기본계획이 수립돼 있다”, “단기간 내 설치하는 인력도 부족하지만 추후 유지관리가 걱정이다”는 의견이 있다.

향후 환경부는 스마트 상수도 사업의 목적을 분명히 수립하고, 지방상수도 현대화사업, 노후상수관 정밀조사사업, 스마트 관망 인프라 구축사업 등 유사 사업을 통합해 2차 스마트 관망관리 사업을 단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개별 지자체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지자체 여건과 특성에 맞는 적용기술을 차별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따라 사업시행 기간을 조정하고 예산 배정 및 집행도 재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후속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사업 시행 성과 데이터 관리 및 검증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사업성과 평가 및 보완을 위해 전문가와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 향후 환경부는 스마트 상수도 사업의 목적을 분명히 수립하고, 지방상수도 현대화사업, 노후상수관 정밀조사사업, 스마트 관망 인프라 구축사업 등 유사 사업을 통합해 2차 스마트 관망관리 사업을 단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물산업 지속성장 위한 R&D 확보 중요

한편 물산업 기술개발(R&D)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R&D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R&D 과제가 없으면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교수가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고,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면 인력을 양성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미래 세대 상하수도 전문인력을 육성할 길은 끊어진다. 즉 R&D는 미래세대 전문인력을 길러내는 원동력인 셈이다.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이행계획 중 ‘상하수도 분야 최적 물관리 기술 지속 개발’ 및 ‘지속가능한 물관리 최적 기술 개발 지속(상하수도)’사업 내용을 보면, 올해와 내년에 신규과제 각각 5건, 4건을 발주하고, 2025년까지 착수된 과제를 모두 종료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사업이 종료되면 2026년에 종합 성과평가가 진행된다.

 

 

이에 따라 차기 연구 일정은 2026년 종합 성과평가를 시작으로 기술수요 조사, 2027년 연구기획(예타), 2028년 환경부·정부 예산 반영, 2029년 과제 발주 순으로 예측되는데, 문제는 2029년에 차기 연구가 발주된다면 2026년부터 다음 발주까지 R&D 과제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다음 연구 발주 년도인 2029년은 연구 일정이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로, 이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

 

 

R&D 과제의 부재로 연구원은 미래 먹거리가 끊기고 전문인력은 육성되지 못할 것이며, 이는 곧 국가 물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대한상하수도학회와 한국물환경학회 등 유관기관의 주체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차기 연구용역이 없다고 단순히 내핍한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주제적 힘과 내적 동력을 증대시켜 나아가야 한다.

 

 

▲ 물산업 기술개발(R&D)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R&D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R&D는 미래세대 전문인력을 길러내는 원동력인 셈이다. 사진은 대구 국가물산업클러스터 내에 설치된 실증화 플랜트 시설.

 

[『워터저널』 2022년 1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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