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Ⅰ. 대한민국 하수도 역사 50년 발자취 


“지속가능한 하수도 재정 건전성 실현 시급”


하수도요금 현실화·경영 효율화·기술혁신 통해 재정소요 획기적인 절감 필요
2000년대, 하수도 보급률 비해 처리효율 부족하지만 친환경 선진 하수도로 발전
 


▲ 김 응 호
홍익대 토목공학과 교수
② 한국 하수도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

해방 이후 단기간 내 빠르게 성장

한국상하수도협회가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의 발주에 따라 지난 12월 8일 발간한 『한국 하수도 발전사』의 사업 목적은 지난 50년간의 하수도 발전상을 토대로 미래 하수도의 역할과 비전을 제시하고 발전과정 역사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보관하는 것이다.

『한국 하수도 발전사』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과거 주요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하수도의 정사(正史) 형태로 편찬됐다. 1권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 변천사를 다루는 동시에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2권에서는 기술 및 산업분야별 발전상, 기관·단체 및 지방하수도의 변천사를 종합적으로 포괄해 기술했다.

편찬위원회의 자체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하수도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대한제국시대부터 근대 하수도의 체계가 갖춰진 것으로 보고 있다. 본격적인 하수도사업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시작됐으며, 해방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상수도와 함께 빠른 속도로 발전해 2014년에는 하수도 보급률 92.5%를 기록, 단기간 내에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급성장을 이뤄냈다.

백제시대 화장실 3단계 정화 시스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은 울산지역의 수혈식 주거지로, 움집 형태의 주거 내·외부에서 배수시설의 흔적이 확인됐다. 이러한 배수시설은 석기시대 주거지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어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처음 주택단위 배수시설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청동기시대 울산지역의 수혈주거지(움집)의 배수시설. [사진출처=울산문화재연구원]

삼국시대에는 백제 익산 왕궁리 배수시설이 대표적인 하수도시설로 꼽힌다. 이 시대 배수관로는 대부분 기와로 축조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흙을 덮은 암거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눈에 띄는 점은 대형 화장실의 존재이다.

▲ 백제 사비기 익산 왕궁리 유적의 상하수도 시설. [사진출처=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화장실 내부에는 벽면에 20㎝ 두께로 황갈색 점토를 덧발라 배설물이 지하수로 침투되는 것을 방지했고, 외부에서 물을 끌어들이지 않고 토관 내부에 일정 기간 분뇨를 저장했다가 일정한 높이까지 내용물이 차면 수로를 통과해 궁성 외부로 빠져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 3단계의 정화과정을 거쳤음을 유추할 수 있다.

도로 측구시설 및 우물 배수로 활용

통일신라시대의 배수시설은 별도의 시설을 갖추었다기보다는 도로의 측구시설과 우물의 배수로에 배수시설의 기능을 더한 것이 보편적이다. 경주 인왕리 유적에서는 ‘ㄷ’자 모양의 담장 내부에 가옥과 우물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우물은 소형 배수로를 따라 중형·대형 배수로와 연결되며, 가옥 외에도 도로 양측에 배수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음이 확인됐다.

고려시대의 유적은 대부분 북한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면밀한 조사를 시행하지 못했으나, 남한지역에 보존되어 있는 사찰의 배수시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개거식(開渠式)과 암거식(暗渠式), 두 종류의 배수시설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사찰은 당시 국가적 지원과 경제적 여력을 배경으로 건물 하부구조인 배수시설에 많은 공을 들여 축조했고, 대지조성과 건물 기반설계 단계부터 지형과 건물 배치를 골고루 고려해 계획적인 배수체계를 구축한 점이 눈길을 끈다.

근대하수도, 오수배제기능 갖춰야

조선 초기에는 매년 심각한 홍수로 청계천이 범람하면서 가옥 및 전답이 침수하고 각종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하는 등 인적·물적 피해가 막심했다. 이에 총 2차례에 걸쳐 하천정비계획에 따라 청계천 준설공사, 제방축조, 교량설치 등 개천공사를 실시했다.

또 영조 36년(1760년)에는 약 2개월간 청계천 준설공사, 유로변경공사 등 준천사업을 시행했다. 공사완료 후에는 준천 효과를 지속하는 동시에 또다시 오물이나 모래가 쌓여 수로가 막히는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상설기구인 준천사(濬川司)를 신설했다.

근대하수도의 개념은 1897∼1910년의 대한제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도입됐다. 근대하수도는 우수배제 기능에 더해 청천 시 발생하는 생활오수까지 배제함으로써 생활환경 개선을 통한 공중위생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하수도 개념을 말한다.

이와 같은 개념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대하수도의 기원을 조선시대 초기에 구축한 개천(오늘날의 청계천)에서 찾을 수 있지만, 이는 처음부터 오수 배제기능을 계획적으로 도입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에 인정될 수 없다. 따라서 국내 근대하수도의 기원은 대한제국시대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염병 방지와 공중위생 향상을 목적으로 배수로 준설 및 청소를 제도적으로 도입한 시기의 하수도에서 찾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 개항기(1876∼1910년)에 설치된 남대문로 근대배수로(왼쪽)와 서울광장 근대배수로 지선 합류지점. [사진제공 = 서울시]

일제강점기 근대하수도 전국 확산

1910년 당시의 우리나라 근대 하수도시설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는 1930년 조선총독부 내무국 토목과에서 발간한 『경성도시계획서(京城都市計劃書)』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시공된 하수도는 암거 형태가 6천832m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개거 형태의 하수도시설은 더욱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배수시설은 유지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일제 강점기 시대(1910∼1945년)의 청계천 모습. 청계천에 설치된 벽화 촬영.

국내 근대하수도 시설이 본격적으로 축조, 개수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한일병합 후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7개년 사업으로 개수계획을 수립했으며, 재정적 문제로 1918년에 이르러서야 청계천 준설과 배수가 불량한 17개 지선을 개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제1기 하수도 개수계획’을 시행했다.

경성 외의 주요 지방도시에서도 1920년부터 하수도 개수사업이 확산되어 점차 전국적으로 근대하수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하수도시설은 일본인 거주지를 우선으로 하는 사업으로 도시기반으로서의 시설로 보기에는 매우 불균형했다. 또한 일본인 기술자 및 청부업자 위주의 식민지적 성격을 띠고 있어 우리 국민이 기술을 추적하기 어려웠다.

경제발전시기 환경오염 해마다 증가

1960∼1970년대 경제발전기의 하수도사업은 △「하수도법」(1966년 8월 3일) 제정과 관련 법제도 정비 △하수도 사업체계 및 기반 구축 △해외차관 중심의 하수도 재정조달 △대규모 하수처리시설 건설 개시 △배수펌프장의 건립·확충 △정화조와 분뇨종말처리시설의 확충 등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발전했다.

1976년 국내 최초의 공공하수처리시설인 청계천 하수종말처리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하수도사업의 계획과 실행은 사실상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대부분의 하수도 공사가 소규모 하수관거의 연장공사나 개·보수로 이루어졌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기를 거치며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하천의 수질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1967년 보광동수원지에서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이 26.3㎎/L로 비교적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다음해 낙동강은 BOD가 185.3㎎/L로 매우 높게 나타나 급속도로 수질오염이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수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경제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전국 하수관로 20년만에 30배 증가

1961년 12월 31일 「수도법」이 제정된 지 5년여가 지난 1966년 8월 3일 「하수도법」이 제정됐다. 상수도의 보급으로 공업생산에 필요한 수자원을 마련하는 동시에 양질의 물을 공급해 국민보건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게 됐으나, 나날이 늘어가는 생활하수 및 오수, 분뇨로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되며 하수도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면서 법적 토대를 갖춰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하수도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다룬 최초의 법인 「하수도법」은 이전에 제정되었던 「오물청소법」, 「도시계획법」, 「공해방지법」, 「하천법」, 「공유수면매립법」 등의 법률에 의해 분산 규정되고 있던 하수도 관련 사항을 모아 통일적·체계적으로 규정한 종합적인 성격을 띠었다.

한편, 경제발전기 동안 서울 및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침수피해 방지를 위해 배수펌프장을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서울·부산에 분뇨처리장을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에는 16개 기타 도시로 확대해 설립했다. 또 1960년 544.5㎞였던 전국 하수관로가 불과 20년만인 1980년에는 1만6천513.6㎞로 30배 가량 대폭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대규모 투자로 하수처리장 건설 부흥

1980∼1990년대의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빈번한 수질오염사고와 하수도 정책의지 및 투자 확대 △88올림픽 등 국제행사와 하수도 보급 확산 △환경부의 발족과 하수도 사업조직의 변화 △지방양여금 및 재정의 확충 △각종 기준의 제정 및 정비 △마을하수도 정비 개시 △하수도기술 선진화 시범사업 개시 등을 중심으로 양적·질적 향상을 동시에 이루기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급속한 산업화·도시화 과정에 있던 1980년 우리나라의 하수배출량은 하루 평균 853만4천㎥ 규모에 달했지만 가동 중인 하수처리장은 서울의 청계천·중랑천하수처리장과 부산의 용호하수처리장, 경북 경주하수처리장 등 4개소에 불과했고 하수처리율 또한 8%에 그쳐 환경오염의 악화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에 1982년 9월부터 1986년 9월까지 약 4년간 총사업비 9천560억 원을 투입해 한국종합개발사업이 이루어졌다. 이 사업은 △수로 고정화 및 저수로 정비를 통한 치수기능의 확대 △고수부지 조성 및 공원화를 통한 휴식공간의 확보 △분류하수관거 및 하수처리시설 건설 등을 수행하는 대규모 종합사업으로, 하수처리시설에만 전체 사업비의 절반이 넘는 5천427억 원이 투입됐다.

1989년에는 총사업비 15조9천억 원을 투자한 ‘맑은물 공급 종합대책’ 수립을 통해 전국적으로 하수처리장 295개소를 건설 및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 실시됐으며, 이어 1996년부터 2005년까지 하수처리장 확충에 총 26조9천억 원을 투입한 ‘4대강 물관리 종합대책’이 추진돼 정부의 수질개선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친환경적 선진 하수도로 발돋움

2000년대 이후 정부는 환경정책과 부합하는 지속가능 발전을 토대로 단순히 하수의 배제와 처리를 위한 하수도에서 벗어나 자원순환의 개념을 통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이루고자 유역관리로 환경관리 대책을 전환했다.

하수처리시설의 확충으로 인해 하수도보급률은 향상됐으나 하수처리 효율은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으로, 하수관로의 노후화 및 불량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에 2002년을 ‘하수관거 정비 원년’으로 선포하고 ‘하수도정비특별지원단’을 구성해 팔당 상류의 9개 시·군을 대상으로 하수관로 정비시범사업을 실시했다.

또한 2000년 들어 설립된 신규 하수처리시설은 호소 등의 부영양화를 방지하기 위해 질소와 인을 처리하는 고도처리시설을 설치토록 했으며, 기존 처리시설은 상수원 수질에 영향을 받는 지역부터 하수관로 개선사업과 병행해 고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2008년부터 시행된 4대강 사업의 여파로 보에서 녹조 발생이 우려되자 그 원인물질인 인(P)을 하수처리시설에서 제거하기 위해 규제가 강화됐다.

▲ 2008년에 시작된 4대강 사업의 여파로 설치한 보에서 녹조 발생이 우려되자 그 원인물질인 총인(T-P)을 하수처리시설에서 제거하도록 규제가 강화되었다. 사진은 이천하수처리장 총인처리시설.

2011년에는 향후 2030년까지 343개소의 하수처리시설을 대상으로 에너지 자립률을 50%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하수처리시설 에너지자립화’를 선언했다. 단순히 오염된 하수를 처리하던 이전의 하수처리시설에서 재이용수를 생산하는 시설로 변환함으로써, 하수처리시설을 혐오시설로 보던 기존의 부정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주민의 생활과 함께 하는 친환경적 선진 하수도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다.

▲ 앞으로는 에너지자립화, 하수재이용을 통한 가치창출을 이뤄내고 나아가 자원순환사회에 부응하는 하수도로거듭나야 한다. 사진은 서울 중랑하수처리장 태양광발전시설.

지구온난화 따른 도전과제 해결 필요

▲ 미래에 하수도가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하수도 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1978년 국내 최초로 하수도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정부의 독립된 부서가 탄생한 이래, 한국 하수도는 부단한 행정혁신을 통한 하수도업무의 효율화 및 하수도의 폭발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물부족 현상 심화 등 한국 하수도는 새로운 도전에 봉착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미래 정책비전으로 △물환경 복원 △하수자원화 △지속가능한 하수도 재정 실현 △국민 체감형 서비스 제공 등이 주목받고 있다.

우선 유역통합관리시스템을 보다 공고히 구축함으로써 건강하고 깨끗한 물환경의 복원을 선도하는 동시에 에너지자립화 및 하수재이용을 통한 가치창출을 이루고 자원순화사회에 부응해야 한다. 또 하수도재정에 있어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건전성이 요구되는 만큼 요금 현실화 및 하수도경영 현실화, 기술혁신 등을 통해 재정소요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

아울러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선진하수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하수도 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 또한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의 요구사항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녹색도시 기능을 제공하는 주민친화형 하수도 등 기대에 맞는 방안을 제시·수행한다면 보다 빠르게 선진 수준의 하수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워터저널』 2017년 1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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