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근 박사 칼럼


‘추수 후 논에 물대기’로  봄철 가뭄 해결하자
 

▲ 류 재 근 박사
·본지 회장
·국립한국교통대학교 명예석좌교수
·(사)한국환경학술단체연합회장
·UNEP 한국위원회 이사
·(전)한국물환경학회장(현 고문)
·(전)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6,7대)
·(전)국립환경과학원장
·(전)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농기계 대신 소가 논밭을 갈던 1970년대 이전에는 가을철 추수가 끝난 후 논에 물을 대 겨울철에 얼려 물의 증발량을 감소시키는 동시에 논에 서식하는 미꾸라지 등을 잡아먹는 등 생태계가 보존되는 장(場)으로서 논을 활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가을 추수가 끝난 후에도 논에 물을 대지 않고 오히려 물을 완전히 빼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가을·겨울철 논에 물이 차있는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댐·저수지가 전국적으로 설치되어 갈수기를 제외하고는 봄철에 논에 물대기가 쉬운 까닭에 가을철에 물을 완전히 빼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논에 물을 빼면 볏짚을 말리기 쉽고, 봄에 모를 심기 위해 논을 갈 때도 작업이 용이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추수 후 논에 물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논에 물이 말라있을 경우 농촌지역의 지하수가 부족하거나 비가 오지 않는 가뭄에는 용수 확보가 어려우므로 수자원 관리의 문제점이 제기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변화 및 엘니뇨현상으로 비가 오지 않는 메마른 날이 이어지고 있어 농촌지역의 물부족 현상이 그 어느때보다 극심한 상태다. 이러한 용수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을철 수확 후 논에 물을 대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는 최근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심각한 봄철 가뭄을 예방하는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가을철 벼를 수확한 후 논에 물대기를 할 경우 적게는 5억㎥에서 많게는 10억㎥의 물을 확보할 수 있어 지하수를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는 논에 물이 얼기 때문에 증발하는 물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개구리, 미꾸라지 등 논에 서식하는 생물의 생태계도 보존되고, 봄철 농업용수 부족현상을 방지할 수 있어 이에 대한 시범사업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 2014년부터 2년에 걸쳐 장기화된 가뭄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어 현재 한강, 금강, 낙동강 유역의 댐 및 저수지의 저수량은 40%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격적인 영농기인 5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업용수 부족으로 논·밭농사에 매우 심각한 지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올해 겨울부터 시범농가를 지정해 논에 물대기를 시행함으로써 겨울철 물을 저장하는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 시범사업 후 내년 봄에 해당 지역의 지하수 및 농사철 수자원 상태를 점검해 사업의 효율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계속해서 농가에 가을철 물대기를 권장하고, 수자원 확보 및 생태계 보전을 실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국 논 면적은 모두 104만5천991㏊(104억6천만㎡)로, 모든 논에 5㎝씩 물을 댈 경우 약 5억㎥이, 10㎝씩 물을 댈 경우 약 10억㎥의 물이 저장 가능하다고 계산된다. 이 물은 내년 봄 가뭄을 해소할 수 있는 양이다.

아울러 가을철 논에 물대기는 하천수질을 개선할 수 있는 물확보 대책의 한 방안으로서 고려할 수 있다. 겨울철 남는 물을 논에 댄다면 지하로 흘러 들어가는 물의 양이 증가하면 말라가는 농촌의 옛 우물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미꾸라지, 드렁허리 등의 생물을 논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겨울철 논은 아무런 활동도 이뤄지지 않는 쉬고 있는 땅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속에는 많은 생물이 숨쉬고 있다. 가을철 논에 물대기를 통해 물을 순환시키고 생태계를 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전국의 논을 인공호수로 활용해 매년 연중행사처럼 찾아오는 가뭄도 막고 하천·호소 수질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기후변화 및 지구온난화 대책의 일환으로 더 늦기 전에 가을철 추수 후 논에 물대기 운동을 전개하자. 

[『워터저널』 2016년 4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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