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 나눔 통해 저개발국 물문제 해결하자

▲ 배철민 편집국장/글로벌물산업정보센터장

현재 전 세계에서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인구는 약 9억 명에 이른다. 특히, UN에 가입된 193개 나라 중 깨끗한 식수를 사용할 수 있는 인구비율이 세계 평균(87%)을 밑도는 나라는 60여 개국으로, 모두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에 속해 있는 저개발국가들이다.

이들 나라는 상수, 하·폐수처리 등 위생환경이 열악해 많은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장티푸스와 같은 수인성 질병에 위협받고 있으며, 물 확보를 위해 어린이와 여성들은 먼 곳까지 가서 무거운 물을 운반하고 있어 건강까지 해치고 있다.

이들 저개발국가의 물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다. ‘적정기술’이란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고 쉽게 운전하고 수리할 수 있게 단순하고, 소규모 운전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의성에 부합하고, 환경 보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것 등의 조건을 갖춘 기술을 말한다.

‘적정기술’의 시작은 1973년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E. F. Schumacher)가 그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안한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 ’이라는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중간기술’은 저개발국의 토착기술보다 우수하지만 선진국의 거대기술보다는 값싸고 소박한 기술을 가리키며, ‘적정기술’은 ‘중간기술’보다 한 단계 나아간 개념으로 각 지역의 문화ㆍ정치적 조건을 감안해 개발된 기술을 일컫는다.

예를 들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쉽게 옮기도록 도와주는 ‘큐 드럼(Q Drum)’, 오염된 물을 곧바로 마실 수 있게 하는 휴대용 정수기 ‘라이프 스트로우(Life Straw)’, 발로 페달을 밟아 물을 끌어올리는 ‘대나무 페달 펌프’,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전기화학적으로 물을 소독하는 ‘솔라셀 물 살균장치’, 어느 곳에서든지 2분 안에 물을 정수할 수 있는 ‘휴대용 정수물병’ 등이 적정기술을 활용한 장치·제품들로 저개발국가 주민들이 널리 사용하고 있다.

적정기술이 등장한 이후 MDG(새천년개발목표), 미국 NCAT(국립적정기술센터) 등 UN과 각국 정부, NGO 등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MIT, 스탠퍼드와 같은 대학에서도 강좌를 열어 학생들에게 적정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ITDG(중간기술개발집단)가 새롭게 이름을 ‘바꾼 프랙티컬 엑션’을 비롯해 ‘IDE’, ‘D-REV’ 등 다수의 전문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이후부터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한동대학교, 한밭대학교 등에서 적정기술에 대한 연구 및 저개발국가에서의 현장 적용이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물 오염이 심각한 수준인 필리핀·캄보디아·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에 ‘적정 환경기술’을 이용한 ‘기술나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입은 필리핀에는 이재민들이 빗물을 정수해 식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수시설을 설치하고, 메콩강 유역 등 급격한 도시 산업화로 지하수 오염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캄보디아에는 시민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소규모 간이 상수도를 만들어 줄 계획이다.

인도네시아에는 섬유공장이 밀집한 반둥 지역에서 폐수를 처리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한 폐수 및 분뇨 처리시설을 건설하고, 베트남에는 지하수의 중금속 오염을 제거하는 기술을 적용하여 현지 여건에 부합한 상수 공급 시스템을 설치할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신흥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주요 사업으로 적정기술 보급을 추진하면서 정부 부처와 KOTRA(한국무역투자공사), K-water(한국수자원공사) 등 정부 산하기관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업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정부 무상원조기관인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비롯해 민간기업, 국제구호단체, 대형교회, 불교계에서도 ‘적정기술’을 활용한 저개발국가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원조를 위한 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의 회원국으로 가입할 정도로 성장했다. 우리나라도 1950∼60년대에는 저개발국가로 잘사는 나라들의 원조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여 정부 부처를 비롯해 더 많은 기관·기업·종교계 등이 ‘적정기술’ 나눔에 적극 동참하여 저개발국가들의 물 문제 해결에 앞장서자.

[『워터저널』 2014년 7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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