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지진은 큰 재해(災害)이자 수많은 개인들의 비극이고, 일본 경제와 전세계 경제에 타격을 안겨주었다. 물론 일본은 이보다 더 심한 재해를 극복한 경험이 있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일본의 대지진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와 환경 오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과거 일본의 지진 발생장소와 그 강도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진도 9.0 규모의 지진이 향후 10년 이내에 발생할 확률은 계산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지진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는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더욱이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지진의 강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여건 등 여러 변수를 정량적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

이러한 인간 지식의 한계를 설명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것이 흑백조(black swan) 사례이다. 17세기까지 유럽인들은 백조는 모두 흰색인 줄 알고 있어서 백조(白鳥)라고 믿었다. 때문에 이들은 유럽의 반대쪽인 호주 퍼스(Perth)에서, 검은 색깔의 백조를 발견하고 혼란스러워 했다. 그리고는 곧장 흑백조의 존재를 과학적 지식으로 설명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검은 깃털을 가진 백조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지식으로 편입됐다.

백조가 흰색이 아닐 확률은 50%이고 백조가 흰색일 확률도 50% 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50%를 무시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흑백조 사례와 같이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문제에 대해 대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발생할 경우, 그 충격은 엄청나다. 예를 들면 최근의 멕시코만의 해상 유전의 폭발, 호주의 대홍수, 뉴질랜드의 대지진, 일본 동북지방의 대지진 등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확률이론이란 흑백조 사례처럼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건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는 과학적 도구이다. 이러한 확률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나 기존의 지식에 근거한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즉 확률은 일반적으로 대중들이나 훈련되지 않은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때문에 객관적인 과학기술 지식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09년 3월 과학기술정책 당국에 다음과 같은 원칙이 각 정부 부처에서 수용되도록 지침서를 만들라 지시한 바 있다. △과학지식과 과학적 과정이 대중 보건, 환경보호, 에너지와 그 밖의 자원 이용의 효율 증대, 기후변화의 위협 완화와 국가 안전 보장을 포함하는 제반 사안에 대해 정부에 해당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결정을 안내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 정책 결정에 정보를 제공하는 과학지식과 과학적 과정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관료가 과학 및 기술적 결과나 결론 도출을 압박하거나 수정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과학 및 기술적 정보가 정부에 의해 개발되고 사용된다면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정책결정에 소용되는 과학 및 기술적 정보의 준비, 확인, 사용의 모든 단계는 투명해야 한다. △과학자와 기술인의 자격이 요구되는 고위직의 선발은 이들의 과학 및 기술 지식, 경력, 경험, 온전성에 근거해야 한다.

이로써 과학적 온전성(scientific integrity)이 사회 혁신과 국민 신뢰 구축의 주춧돌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정책 국장은 거의 2년에 걸쳐 여러 정부 부처들과 협의해 지난해 12월 정부에서의 과학적 온전성의 토대, 국민과의 의사소통, 정부 자문위원회의 이용, 정부내의 과학자와 공학자의 전문성 육성에 관한 지침서를 공표했다.

환경사안은 그 속성이 과학기술적이기 때문에 해당사안에 대한 과학기술적인 이해가 이에 대처하는 사회적 의사결정을 지배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최고의 과학기술지식을 사회로부터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의 구제역 대유행과, 가축들의 살처분(殺處分)으로 인한 재산 및 환경 피해, 일본 대지진 사태 등을 보면서, 기계적 매뉴얼의 유용성보다는 선입견이 없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과학기술지식의 사용이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편임을 다시 깨닫게 됐다. 흑백조는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난다고 인식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속성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본지 회장> [『워터저널』 2011. 5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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