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물 위에 내려앉은 백로는 물 속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백로의 좁아진 시야만큼 주위에는 정적이 흐르고 산책나온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도 어느새 작아졌다. ‘철벙’ 백로가 물속에 머리를 넣다 꺼내니 어느새 놈의 부리엔 손바닥만한 붕어가 물려있다. 끄덕끄덕 머리를 들었다 내리는 순간 놈의 목줄기는 뱃속으로 들어가는 물고기로 불룩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주변이 시끄러운 줄 깨달았다는 듯 백로는 아파트 쪽으로 날아올랐다. 27일 찾아간 서울 양재천의 풍경이었다.

‘하천 복원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양재천은 1995년 강남구가 복원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엔 생활오수가 흘러드는 냄새나는 개천일 뿐이었다. 99년 복원사업이 끝나고 맑은 물이 흐르자 양재천에는 생명이 깃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휴식공간으로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욕구가 커지자 도시하천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서울 청계천,성북천,성내천 등의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지방에서도 제주도 산지천,청주 무심천 등이 복원됐거나 추진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하천은 콘크리트로 복개돼 있거나 물이 마른 건천상태로 생태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신음하는 도시하천=서울시내를 흐르는 하천은 35개다. 그러나 한강,중랑천,안양천,탄천 등을 제외하면 항상 물이 흐르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천을 흐르던 물이 지하공간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지하철,고층 빌딩 등의 건설로 인해 지하공간이 파헤쳐지고 마구잡이식 지하수 개발이 겹치면서 지하수위가 낮아진 것이 원인이다.
도심지역이 포장되면서 땅 속으로 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것도 대부분의 하천이 건천이 된 까닭이다.

개발이전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크고 작은 14개의 지류는 모두 콘크리트로 덮여 지금은 자취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 하천은 평균 52.3%가 복개됐다. 만초천,면목천,월곡천,녹번천,봉원천,삼성천 등은 완전 복개됐으며 반포천,화계천,가오천,대동천,방학천,사당천 등도 생명을 키우는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땅속으로 사라져 하수구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복개된 하천으로 유입되는 물은 하수처리장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복개된 부분이 끝나는 부분부터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 되고 있다.

복개되지 않은 하천은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하천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콘크리트 블록으로 덮였다. 포장된 도로 위로 흐르는 물은 오염물질을 머금은 채 한꺼번에 하천으로 쏟아져 들어 2000년 ‘중랑천 물고기 떼죽음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도심에서 생명을 볼 수 있는 곳= 하천의 생태계가 심하게 파괴돼 있기는 하지만 산을 제외하고 도심에서 생명을 볼 수 있는 곳은 하천 뿐이다. 전문가들은 하천 생태계가 살아나야 산과 강을 잇는 녹지축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장마가 계속됐던 지난 18일 청계천 일대는 중랑천,한강에서 거슬러 올라온 잉어,붕어 떼로 장관을 이뤘다. 물고기들이 불어난 물줄기 덕분에 중랑천 입구에 떼죽음을 막기 위해 쳐놓은 어류유입방지 철망을 넘어 올라왔던 것. 몰려든 건설 관계자들과 시민들은 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청계천에서 물고기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양재천,성내천,성북천 등에서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하천복원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덮개가 열린 하천에는 각종 생물이 돌아왔으며 친환경적으로 정비된 공원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한강 지천은 도시 외곽의 산 속에서 발원하고 있으며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함께 야생동물이 이동하는 통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2004년 서울시 ‘비오톱(생물이 살수 있는 최소 공간)’ 조사에서는 ‘도심하천은 도심과 도시 외곽을 연결하는 선형 녹지축으로서의 잠재적 가치가 높으며 하천의 생태적 복원을 통해 생물종 다양성을 증진해야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각 지천 유역에서 모두 300여종에 이르는 생물이 발견됐으며 제비,박새,왕잠자리,풀무치 등 서울시 보호종이 살고 있다. 족제비,청설모 등 소형 포유동물도 하천을 먹이 공급지 및 주요 이동로로 삼고 있다.

◇도심의 에어컨=도시 하천은 열대야의 주된 원인인 열섬현상을 완화시켜주는 등 도시 기후를 조절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시하천이 냉각기와 바람길 역할을 통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도심 지역에서 열기를 낮추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운수 박사 연구팀은 ‘청계천 복원 전후 미기후 분석’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청계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물을 흐르게 할 경우 평균 0.6℃,최고 0.8℃까지 온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박사는 지난 해 6월 청계천을 11개 구간으로 나눠 시뮬레이션 평가한 결과 청계9가 교차로∼서울시설관리공단 구간은 8월 평균 25.8℃를 기록하던 온도가 0.8℃ 낮아진 25.0℃로 하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 30년동안 서울시 연평균 온도가 1.4℃ 상승한 것과 비교할 때 하천복원은 엄청난 기온조절 효과를 보이는 것이라고 김 박사는 설명했다.

기상청 기상연구소 엄향희 박사는 “도시하천이 도심의 미기후(微氣候:좁은 지역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하천을 따라 부는 바람은 도심지역의 기온을 낮추며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환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일본 히로시마 오타강 유역의 기온 분석 자료에는 하천에 가까워질수록 온도가 내려가는 모습이 뚜렷했다. 수면 위의 기온은 29℃를 기록했으며 100뻍 멀어질 때마다 약 1℃정도 올라가는 모습이 확연했다.

김운수 박사는 “청계천 복원으로 수변,녹지공간이 새로 생기면 하류지역 12만5000평의 평균온도를 0.6℃ 낮추는 도시열섬 냉각 효과가 기대된다”며 “자동차 통행량이 줄어들고 아스팔트를 걷어내면서 얻을 수 있는 냉각효과는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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