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특집②   Ⅰ.  지속가능한 국가 물관리 방안


“물 인프라 건설서 물 서비스 시대로 전환 필요”

국내 물 인프라 포화 상태…구축 아닌 유지관리로 패러다임 바꿔야
서비스 체감효과 높이기 위해 수요자인 시민들 참여와 의사결정 중요


▲ 이 병 국
KEI 선임연구위원
Part 02. 지속가능한 물관리를 위한 물관리 패러다임 전환과 과제

1961년 상수도 보급률 17%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후 약 6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뤄내며 극심한 물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물수요가 늘어난 일차적 이유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됨에 따라 인구 또한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밀도는 1970년 320.4명/㎢에서 2018년 516명/㎢으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이는 세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외에도 환경용량을 넘는 축산이나 관리되지 않는 농업 등이 물수요 증가에 한 몫 했다.

1960년대 초기만 해도 우리나라는 상하수도 등 물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대한토목학회가 발표한 『한국토목사』(2001년)에 따르면 1961년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은 17.1%에 불과했고 하수도는 기존 시설의 유지·보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1969년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전국에 있는 우물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전체 우물 가운데 64% 가량이 수질안전기준 미달을 보였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그 때 당시 제대로 된 물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걸 볼 수 있으며, 실제로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콜레라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수자원 개발, 수도망 구축, 하수처리시설 도입, 하수관거 보급 확대 등 물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그 결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61년 85달러에서 2017년 2만9천743달러로 약 350배 증가했고, 같은 기간 상하수도 보급률은 각각 17%에서 99.1%, 2%에서 93.6%로 대폭 상승했다. 특히 물 인프라는 시설 면에서 세계 최상위 수준에 도달했다.

 
물 사용량, 연 강수량의 26% 불과

그동안 정부는 제방, 배수시설 등 하천시설을 비롯해 댐·저수지 등 저류 구조물, 취·저수시설과 관로, 관정 등 용수공급시설 등 엄청난 양의 수리시설을 단기간에 구축하고 관리해 왔다. 지난 2017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는 3천838개소의 하천이 있다. 상수관로 길이는 약 21만㎞, 하수관로 길이는 약 15만㎞에 육박하며 배수시설 5천600곳, 농업용저수지 1만7천289개소, 관정 2만5천660개 등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처럼 수준 높은 물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우리나라의 물 스트레스는 여전히 높다. 기후 특성상 강수량 중 많은 양이 하천을 통해 바다로 흘러나가는 탓에 연간 총 강수량(1천297㎥) 대비 실제 물 사용량(333㎥)은 26%에 불과한 실정이다.

통계적으로 볼 때도 사실상 국민 1인당 약 1.8㎥의 물을 쓰고 0.5㎥의 하수를 배출시키는데, 물 발자국(water footprint)은 2011년을 기준으로 4.5㎥ 정도로 물 스트레스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 발자국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을 추적해 계산하고 발자국으로 표시한 개념이다.

아울러 생태계는 계속해서 망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물 인프라 투자는 철저하게 국가 주도 아래 진행돼 왔으며, 이에 국가 주도로 진행된 도심하천 수질개선사업이 효과를 나타냈던 때도 있었다. 1995년의 ‘양재천 자연형하천복원사업’을 계기로 양재천은 냄새 나던 하천에서 주민이 찾는 휴식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파괴되었던 생태계 또한 상당 부분 회복했다.

하지만 도시하천의 수질개선 효과는 점차 한계에 도달했다. 단기간에 많이 세워진 물 인프라는 하천과 저수지, 그 주변 생태계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한 예로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된 이후 한강 상류에서는 뱀장어, 숭어, 살치, 강준치 등 희귀성 어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영산강, 낙동강, 금강 등의 상황도 한강과 다르지 않다.

건설투자 대비 유지관리 비율 14.6%

우리나라 물 인프라는 현재 상수도, 하수도, 댐·저수지, 하천시설 등을 더 이상 새로 건설할 곳이 없을 만큼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 중 특히 댐, 저수지, 양·배수지 등은 과거 최대 가뭄 발생을 기준으로 공급 가능량(2020년)이 겨우 1.8%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물공급 문제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 인프라 건설의 시대는 가고 유지관리와 재구축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초기 인프라 투자 단계를 지난 것이며 앞으로는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설 노후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로 오는 2025년이면 전국 물 인프라의 50.2%가, 2035년이면 72.3%가 건설한 지 20년 이상 지난 노후 인프라로 분류된다. 특히, 건설 후 50년 이상 지난 인프라가 2025년 14.1%에서 2035년 27.8%로 약 2배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에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유지·보수 예산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초기 건설비용은 물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총 비용의 35∼40%에 불과하다. 수도요금으로 유지비를 충당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국내 수도요금 현실화율은 상수도의 경우 80%, 하수도의 경우 40% 수준으로 낮다. 게다가 유지관리비는 해마다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13년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투자 대비 유지관리 비율은 14.6%로 선진국의 40%에 비해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충분한 유지관리 예산 확보가 관건

지난 2014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전국 지자체의 물 관련 인프라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행 유지관리 체계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체계적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 인프라의 유지관리비용은 정확한 자료나 통계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전년 대비 예산에 의존해 대응적으로만 산정되고 있고, 상태평가를 바탕으로 한 수명예측에 따라 교체와 수리를 하지 않고 있으며, 문제가 발생해야 수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시설물 노후화로 인한 집중적인 교체 시기를 대비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밖에도 물관리 지속가능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다. 문제는 재정적 지속성이다. 한 예로 대구시와 영천시의 경우 상하수도 인프라의 지속성 지수가 2013년 기준 0.6에서 올해 0.4대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비단 대구와 영천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적으로 물 인프라 구축은 2000년대에 거의 완료됐고 이후 유지관리 시대로 돌입했다. 현재와 같은 재정 구조가 지속되어 재구축 시대에 돌입할 경우 지속가능성은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관리 시설을 막대하게 건설해온 것이 다가 아니다. 이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보존해 미래세대에 넘겨주느냐가 관건이다. 물관리시설 또한 일반 건물이나 상업시설처럼 오랫동안 잘 쓰고 가치를 높여 건물 입주자들과 함께 시설의 가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반면 물의 서비스 수요는 변하고 있다. 1980∼1990년대에는 상수도, 하·폐수, 수질 등이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생태계와 문화, 놀이, 낚시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즉 국민들은 이제 먹는 물, 버리는 물에서 어떻게 하면 자연과 융화되어 살아갈 것인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2016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국민환경의식조사 일환으로 실시한 물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상하수도 부문 민원은 각각 116만 건, 105만2천 건으로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상하수도 시설 관리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수립계획부터 순환율 염두에 두어야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물관리 지속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 물관리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높은 취수율에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하천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구조다. 그로 인해 하천에 있는 기존 생태계를 위한 물이 줄어들고, 새로 구축되는 수많은 구조물 때문에 수생태계의 연결성과 유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을 위해서만 물을 썼다면 물관리 지속성을 늘리기 위해 이제 어떻게 하면 인간과 자연 모두가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서는 수생태계 회복을 위한 여러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물관리 시설물을 인간 중심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중심으로 관리포인트를 전환시켜야 한다. 캐나다의 경우 물인프라를 비롯한 도시기반시설 자산 생태 구축이 우수한 나라다. 우리나라도 기존에 있는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이나 「물관리기본법」을 준수해 정책 방향을 정하고, 2020년 2월 시행 예정인 「시설물관리기본법」에 따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아울러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왜곡된 도시 물순환의 개선이 시급하다. 물의 기저 수요를 낮추고 자급률을 높여야 하며, △물 재이용 △수원 다변화 △불투수면 영향 최소화 등으로 적절한 물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구축한 인프라는 50년이 지나면 다시 정비가 필요해 수립계획에서부터 어떻게 하면 순환율을 높일 것인가 하는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영향·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

물이 보편적인 공공재이므로 가능한 한 저가로 물을 공급하는 것이 좋으나 30년이 넘도록 물가 반영을 하지 않고 있으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물 서비스 요금은 공공물가 관리에 의해서도 좌우되는데 ‘연도별 하수도 총괄원가’ 회수현황을 보면 선거철이 다가올 때 현실화율이 급격히 변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농업용수의 경우, 전체 물 사용량의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으나 단 한 푼의 요금도 징수하지 않고 있다. 만약 물서비스가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나 정치적 영향과 연계되지 않고 이뤄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물산업 생태가 만들어질 것이다.

아울러 전국의 지자체 물 관련 인프라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통신요금 △연료비 △대중교통비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과 같은 공공요금 월 지출액 추이 및 중요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통신요금이 제일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도요금이 제일 낮게 나타났다.

국민들 뿐 아니라 물인프라 담당자 또한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며, 과연 이러한 인식을 어떻게 바꿔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앞으로 대비해야 할 물인프라 유지관리 시대에 다행인 점은 첨단기술을 사용해 위험관리를 할 수 있고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곳곳에서 수돗물 공급의 모든 과정을 4차 산업혁명 기반 스마트 기술로 관리하는 ‘스마트 물관리’ 등이 도입되고 있다. 첨단 기술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기술화되고 있어 기술이 잘 도입되면 시설물 손상이나 위험 관리 등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과의 소통

지속가능한 도시물관리를 확보하려면 사회, 환경, 경제 등 다양한 요인들이 갖춘 시설물관리와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아울러 유지관리 시대 중심과 수요자 중심으로 바뀔 이 분야의 가장 우선순위는 시민참여, 정보공개, 회계 투명성, 일관된 정책 등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물관리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참여다. 현재 물관리 분야의 정책을 주관하실 국가물관리위원회위원장은 물에 대한 관심도가 높겠지만 일반 국민은 큰 관심이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측의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정보에 기반을 둔 소통과 관심,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물 관련 통계 실측을 할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추정값들이 너무 많다. 이는 측정에 드는 비용 지원이 안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물관련 연구비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민과 수요자들이 물서비스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에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이번에 수립된 「물관리기본법」과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의 요체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한 체감 효과를 높이기 위한 관계자들의 참여와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아울러  수질이 악화된 곳에 개선사업을 잘 추진한다면 국민들의 물관리의 중요도 체감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 참여를 기본 바탕으로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세세히 검토해 물관리를 해나가는 것이 현재 패러다임에서 가장 중요하다. 

[『워터저널』 2019년 12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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