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과 황사

   
대평원이라 불리는 텍사스, 몬테나 등 10개 주에 걸쳐 펼쳐진 미국의 중서부 초원지대는 인디언과 들소들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서부개척이 시작되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밀값이 폭등하면서 농민들은 목장을 대규모 밀밭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1933년 시작된 가뭄이 2년 연속 계속되자 말라붙은 흙은 먼지가 되어 대평원의 강풍을 타고 뉴욕, 시카고, 멀리는 대서양을 항해중이던 선박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3억5천만 톤의 비옥한 표토가 황폐화되었고, 결국 농토를 잃은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힘든 여정에 나서게 된다.

이를 묘사한 작품이 194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이다.

우리나라도 토우(土雨) 황우(黃雨) 적설(赤雪) 황무(黃霧)와 같은 표현으로 삼국시대 이래 ‘황사’에 대한 기록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현종 때는 황사로 사방이 어둡고 역질이 번져 사람이 죽어 나갔다고 한다.

공민왕 때도 눈 뜨고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황사가 심하자 임금은 국정을 장악하던 신돈에게 문수회를 베풀어 바람을 자게 하도록 하명했다고 한다.

꽃들이 봉오리를 터트리고 봄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하늘을 누렇게 덮는 황사는 무소불위의 불청객이다.

최근에는 황사의 발생 빈도가 늘고 그 강도도 강해지고 있다.

중국, 몽골 등 황사 발원지에서의 무분별한 방목과 벌채, 광산개발과 아울러 지구온난화 등으로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황사에 대한 각종 대책도 황사 발원지의 사막화 진행 속도를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정부는 한·중·일 3국에 몽골과 피해국 북한까지 참여시켜 ‘동북아환경협력체’를 구성하고, 국제기구와 함께 ‘황사방지기금’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한 황사예보의 정확성을 높여 국민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황사 관측망을 늘리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등 북한에도 올해 안에 황사 관측장비를 설치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황사현상을 왕의 부덕의 소치라 여기고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술을 삼가는 등 몸가짐을 바로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황사가 심해지는 것도 물질적 탐욕에 치중한 현대인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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